아! 초원위의 집2014. 11. 24. 18:43



일본은 미국,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대국이지만, 태풍과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달고 사는 나라다. 지진이라는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기에 일본인들은 고층보다는 저층, 콘크리트보다는 나무를 사용해 집을 지었다.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가까웠다. 그러나 친환경 주택이 세계 건축계의 화두로 등장하면서 일본 목조주택 기술이 주목 받고 있다. 일본인 특유의 ‘세밀함’을 주택 시공 기술에 접목시킨 프리커트(Pre-Cut·선 가공) 방식의 공업화주택으로 바야흐로 일본은 세계 주택시장을 석권할 태세다.



- 일본 나가사키현 이사하야시 세이부다이초 그린힐스에 들어선 단독주택. 

지난 6월10일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이사하야(早)시 오가와초(小川町·오가와동) 내 한 주택단지. 일본 단독주택 브랜드 아이풀홈(Eyeful Home)을 짓는 가즈(和)건설 현장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인부 9명이 투입된 이날 공사는 연면적 127㎡(38평)짜리 큐브(Cube)형 주택을 짓는 일이었다. 공사를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거실, 주방이 들어설 1층 구조체가 완성됐다. 일본 목조주택은 바닥을 다진 다음, 콘크리트로 테두리를 두르고, 그 위에 층(層)을 쌓는 방식이다. 실제 바닥은 지면과 약간 떨어뜨린다. 이렇게 지어야 주택 바닥 면까지 공기가 들어가 집이 썩지 않는다. 이렇게 생긴 바닥 공간은 저장고로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편리하다. 일본 공사현장에서는 ‘50분 작업, 10분 휴식’이 정례화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층 천장 위로 두께 7~8㎝의 합판을 깔고 그 위에 한 층을 더 올리는 일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 지붕을 포함, 건물 외부를 짓는 데는 1~2일 정도 걸린다.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현장 인부 중 못을 사용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마치 ‘레고 블록’처럼 나무와 나무를 잇고 그 안에 지름 1㎝, 길이 7~8㎝의 핀(Pin)을 끼우기만 한다. 과연 이 정도만으로 집이 하중(荷重)을 견뎌낼 수 있을까. 비밀은 일본 주택시공기술의 핵심인 프리커트에 있다. 

 
1. 다카시마그룹에서는 모든 목재를 기계로 정밀하게 가공하며 현장에서는 조립만 한다. 
2. 다카시마그룹이 특허를 보유한 메탈조인트 기술은 나무와 나무를 철 핀으로 고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3. 프리커트 방식으로 다듬은 목재. 동전 두께와 비슷할 정도로 정밀하게 가공한다. 


프리커트 방식으로 현장에서는 조립만
일본 내에서는 공업화주택(工業化住宅)이라고 불리는 프리커트는 시공 전 목재 공장에서 기계로 기둥, 보, 벽체 목재를 만든 뒤, 현장에서는 이를 연결만 하는 시공 기술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집을 가리켜 프리패브(Prefabrication의 줄임말) 주택이라고 부른다. 원래 북유럽에서 처음 선보인 프리커트 방식의 프리패브 주택은 일본으로 건너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지난 1962년 대형 주택건설업체인 미사와홈이 첫선을 보이면서 등장한 목재 프리패브 주택은 현재 세키스이(積水)하우스, 다이와(大和)하우스가 주도하는 철골 프리패브 주택과 함께 일본 주택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목재 프리패브 주택 수요는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1980년대 캐드(Computer Aided Design), 캠(Computer Aided Manufacturing)의 등장으로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공무점(工務店)이라고 불리는 중소 목재소가 제재소(製材所)형태로 대형화되기 시작한 것도 자연스럽게 목재 프리패브 주택의 확대로 이어졌다.   

프리커트 방식의 장점은 목재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오차율이 수작업 방식보다 훨씬 낮다. 나가사키현 이사하야시에 본사를 둔 다카시마(高島)그룹은 일본 규슈(九州)지역 최대 목재회사로 프리커트 방식을 도입한 지 올해로 30년 가까이 됐다. 조켄(長建)목재공급주식회사의 미즈아시 다카미(水蘆孝巳)대표는 “정밀기계로 가공했기 때문에 프리커트 목재는 1㎜의 오차도 없다”면서 “목조 프리패브 주택이 열효율이 높은 것도 결국 프리커트 목재가 약간의 틈도 없이 정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목재는 산업용 로봇으로 정밀하게 깎는다. 물론 모든 공정은 100% 자동화돼 있다.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톱밥은 진공청소기가 바로 빨아들이기 때문에 미세먼지조차 발생하지 않는다. 구간 구간을 절단하면서 발생한 폐목재는 전체 10% 미만이다. 이마저도 80%는 중국으로 수출돼 중저가 가구를 제작하는 데 쓰이며, 나머지 20%는 바이오에너지를 추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음부분의 강도를 높여 구조체의 하중을 높이는 것은 최근 일본주택들의 전반적인 트렌드다. 다카시마주택이 특허를 보유한 메탈조인트(Metal Joint) 기술은 구조체인 나무 안에 쇠로 된 이음매를 집어넣어 이를 철 핀으로 고정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대형 주택건설업체인 미사와홈은 항공기와 경주용 자동차 차체 제작에 쓰이는 모노코크(Monocoque) 기술을 주택 시공에 도입해 주목 받고 있다. 본체와 주변 프레임을 견고하게 이어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물체인 것처럼 만드는 모노코크 방식에는 강력접착제와 스크루 못만 사용되지만 강도는 웬만한 철골조 주택 이상이다. 

목조주택은 안전성과 내구성이 약할 것이라는 선입견 탓에 1990년대 초반까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995년 고베(神戶) 대지진 이후, 지진과 화재에 목조주택이 훨씬 강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제는 일본 주택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실제로 미사와홈은 회사 소개 자료에서 자사가 공급한 주택 중 구조체 결함으로 집이 붕괴된 경우가 지난 40년간 단 한차례도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 이사하야시 다카키초에 들어선 다카시마 임대주택 단지. 

목조주택, 지진·화재에 강해 인기
이사하야시에는 35년 전 다카시마주택이 처음 시공에 나선 ‘다카시마단지’가 있다. 10여가구로 구성된 단지 주택은 완공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외부 도색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신축된 주택처럼 깨끗하다. 완공된 지 30년이 지난 우리나라 아파트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다카시마 쇼타로(高島正太郞) 다카시마건설 상무는 “입주민들과 상의해 조만간 리폼(부분 설비 교체) 작업에 들어갈 예정인데, 이렇게만 하면 100년 이상은 충분히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주택관계자들은 목조주택의 건축물 수명을 100년 이상으로 본다. 굳이 일본산 삼나무(杉·스기), 노송나무(檜·히노키)를 쓰지 않아도 내구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일본 주택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최근 시공에 쓰이는 나무는 상당수가 수입산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비결은 바로 가공 기술에 있다. 이사하야시 다카시마그룹 목재공장에 위치한 드라이퍼펙트(Dry Perfect) 내에서는 목재의 수분함유율을 8~10% 수준으로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생산 지역이 달라도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다양한 가공기술 때문이다. 이러한 목재 가공 기술 덕분에 비가 많고 습도가 높은 자연 환경 속에서 일본주택은 수명이 100년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벽체 안쪽을 항상 건조한 상태로 유지하도록 통풍과 관련한 노하우도 상당하다. 이창헌 사이와홈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지어지는 목조주택은 통풍과 습도 등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않고 짓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지은 지 몇 년 만에 구조체가 뒤틀리고, 벽체 틈이 벌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우리보다 더 기후환경이 좋지 않지만 계량화로 이 문제를 쉽게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더군다나 일본 목조 프리패브 주택은 철골 프리패브 주택보다 시공비가 싸, 생애 첫 주택 건축에 나서는 30~40대 소비자 사이에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부동산 시장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아베 정권이 소비세를 인상하면서 거래량과 착공 건수는 다소 줄었지만, 정부의 다양한 경기 부양책이 최근 효과를 거두는 모습이다. 다국적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존스랑라살(Jones Lang LaSalle)에 따르면, 도쿄(東京)의 올 1분기 거래액은 100억달러(약 10조2000억원)를 넘어서 세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사하야시 세이부다이초(西部台町·동) 그린힐스는 세키스이하우스, 세키스이하임, 다이와하우스, 파나홈, 미사와홈 등 일본의 대표적 주택 메이커들이 공동으로 택지를 개발하는 곳이다. 파나홈(Pana Home)은 마쓰시타(松下)그룹 계열사로, 철골 프리패브 주택 시공에 강점을 갖고 있다. 대형건설사들이 택지 분양에 나선 까닭에 이미 5분의 4 이상 필지가 매각됐다. 현장에서 만난 마에카와 고지(前川耕治) 미사와홈 나가사키지점 영업부 과장은 “일반적으로 45평(132㎡) 규모의 큐브(사각)형 단독주택을 찾는 수요가 가장 많다”면서 “매매가는 보통 7000만엔(약 7억100만원) 수준인데 대부분 20년 장기분할 상환으로 매입하기 때문에 집값 자체가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린힐스는 시 중심부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지만 새로 지은 집들이 대거 들어서 있어 젊은층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가동이 중단되면서 전기료가 상승하고 있고, 이는 친환경 주택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이와 게이스케(大巖啓介) 가즈건설 대표는 “서양식과 일본전통식 주택이 7~8년 주기로 번갈아 부침을 거듭했고 최근에는 태양열 주택을 찾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사하야시 다카키초(高木町·동)에 들어선 다카시마 임대주택 단지가 대표적 사례다. 60㎡(18평), 지상 2층으로 지어진 9가구는 지난해 완공된 임대주택이다.

 
- 사이와홈이 오는 8월 인천 영종도에 분양할 단독주택 ‘자연도가’.(위 이미지는 분양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 

동일본 대지진 이후 태양광 발전설비 설치

현재 일본 정부는 신축 주택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할 경우 보조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는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대체 전력을 확충하고 글로벌 태양광 발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다목적 카드다. 관련업계에서는 올해 일본의 태양광 설치량이 43GW(기가와트)로 전년 대비 23%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카시마 마사히로(高島正弘) 다카시마그룹 회장은 “1㎾당 20만엔의 설치비를 지원하던 것이 최근 4만엔으로 줄었지만 20년가량 사용하면 시공비를 뽑고도 남는다”면서 “일본인들은 대부분이 한번 주택을 지으면 20~30년 이상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설치비에 대한 부담은 생각보다 적다”고 강조했다.

여름철 뜨거운 대기 열을 전력으로 전환시키는 에코큐트 시스템도 최근 일본 주택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 시스템은 가정 내 전기료 부담을 낮추고 있으며, 남은 전기는 지역 내 민간전력회사에 판매하기도 해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다는 지적이다. 일본 목조주택 기술명장 출신인 사이와홈의 오카베 요시히토 기술이사는 “역설적으로 고베 대지진이 목조주택 내진(耐震)·내화(耐火) 기준 향상에 기여했다면,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친환경 주택시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면서 “한번 지으면 100년을 쓰는 일본 주택 기술과 친환경 시스템이 접목될 경우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Mini  interview ● 다카시마 마사히로 다카시마그룹 회장
“집은 곧 자연이기에 나무로 지어야 합니다”

 
- 일본 목수들이 쓰는 전통자를 들고 포즈를 취한 다카시마 마사히로 다카시마그룹 회장. 

1948년 설립돼 올해로 66년째를 맞는 다카시마그룹은 일본 규슈 지방을 대표하는 종합주택업체다. 목재 가공부터 유통은 물론 시공도 한다. 특히 프리커트 기술에 있어서 다카시마그룹은 선두권에 속한다. 일본 내에서도 비교적 빨리 관련 기술을 도입한 회사로 꼽힌다. 관련 업계에서는 다카시마그룹이 일본 경제의 암흑기인 ‘잃어버린 20년’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로 프리커트로의 사업 전환을 꼽는다. 이 기술은 2대째인 다카시마 마사히로 회장이 주도해 도입했다. 

“프리커트를 도입한다고 하니까, 지역 목수들이 ‘미친 짓’이라고 했어요. ‘집 짓는 데 쓰는 나무는 그렇게 공장에서 찍어내 만들 수 없다’며 말이죠. 선친께서도 강력하게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신중하게 잘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당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언제까지 일본 주택은 장인들의 기술에만 의존할 것인가’라고 말이죠. 결과적으로 현재 일본 내 신축 주택의 90%가 프리커트 기술을 사용합니다. 일본 목조 주택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것도 따지고 보면 프리커트 기술이 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다카시마 회장은 “지금은 결과적으로 프리커트 기술을 도입한 회사만 살아남았으며, 나가사키현에서 목수가 목재를 손수 도구로 깎아 집을 짓는 경우는 1%가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일본식 주택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나무(木)’다. 미국, 유럽 주택이 돌과 벽돌을 사용해 지어진다면 일본은 일부 구조체를 제외하고는 주택의 상당부분이 나무로 채워진다.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다카시마 회장은 “집이 곧 자연이기 때문에 나무로 지어야만 자연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자재는 외국에서 수입해 오지만 우리가 가진 목조주택 기술은 미국, 유럽이 따라올 수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했다.  

최근 일본주택은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겉은 서구식으로 짓더라도 집안 내 와시쓰(和室)라고 부르는 다다미(속에 짚을 두껍게 넣고 위에는 돗자리를 대어 단단히 꿰맨 것으로 마루방에 까는 매트)방을 꼭 집어넣는 것이 최근 일본 신축 주택의 중요한 트렌드다. 이 공간은 대개 1층 거실 한쪽에 마련되며, 주로 조상의 위패(位牌)를 모셔두거나, 게스트하우스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다카시마 회장은 한국 목조주택 기술이 꾸준하게 전승되지 못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몇해 전 덕수궁과 경복궁을 둘러봤다는 다카시마 회장은 “한국이나 일본 모두 중목구조(기둥과 보를 나무로 잇는 방식) 건축 방식을 중국에서 받아들인 것만 봐도 두 나라의 건축 기술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한국은 관련 기술이 단절된 반면, 일본은 개량·발전된 것이 오늘날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다카시마그룹은 현재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는 조만간 한국 시장 진출을 검토하기 위해 내한할 계획이다. 그는 “‘프리커트’ 기술로 성공을 이뤄낸 것처럼, 한국 시장 진출이 그룹 역사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카시마건설이 국내 시공사인 사이와홈과 손잡고 오는 8월 인천 영종도에 짓는 ‘자연도가’는 전용면적 132~231㎡(52~70평) 규모의 단독주택 27가구로 구성돼 있다. 분양가는 땅값과 건축비를 포함해 9억~16억원 정도다. 

이와는 별도로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덕촌리에서는 세 차례에 걸쳐 110가구 규모로 단독주택 단지를 지을 계획이다.

글: 나가사키(일본) = 송창섭 기자 (realsong@chosun.com)


Posted by 탑스미네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