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오늘 우리는 산타크루즈 섬의 다윈센터를 찾아간다. 다윈센터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연구자들이 동식물에 대한 보호관찰을 연구하는 곳이다. 특히 거북이의 사육 관찰로 유명하다. 갈라파고스의 생태계와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한 마리의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그 이름부터 외로움이 묻어나는 ‘론섬 조지(Lonesome Jorge)’. 내가 그를 만나러 갔을 때, 그는 지구에 단 한 마리 남은 핀타섬 자이언트 거북이였다*. 외로운 조지의 작은 얼굴을 들여다보며 서 있던 그날, 내 안에서 답 없는 질문들이 일렁였다. 조지는 다른 거북이들과 함께 했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만일 지구에 남겨진 유일한 인간 종이었다면 무엇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을까. 조지의 몸에 새겨진 깊고 선명한 주름은 사라진 동료들을 향한 그리움의 흔적은 아닐까.
1959년, 갈라파고스 군도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20만 마리의 거북이가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잡혀갔다. 고기나 기름을 얻기 위해서다. 론섬 조지는 핀타섬에 남은 유일한 거북이였다. 식물학자가 조지를 발견했을 때 거북이를 전공한 동물학자들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식물학자는 조지의 사진을 찍었고, 증거는 그걸로 충분했다. 100세 정도로 추정되는 조지는 조지아, 조르지나라는 이름의 암컷 거북이 두 마리와 살고 있었다. 어렵게 알도 낳았지만 부화가 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조지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를 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조지는 자신의 대에서 핀타섬 자이언트 거북이의 삶을 끝내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나날이 수를 불리며 지구를 장악해가는 인간이라는 종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무리 속에서도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조지를 보며 나는 혼자 남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다.
갈라파고스의 섬은 섬마다 풍경과 거주하는 생명체들이 달라 매혹적이다. 갈라파고스의 야생동물은 고유종이 대부분이다. 파충류의 90퍼센트, 포유류의 85퍼센트, 바닷새의 60퍼센트, 육지새의 90퍼센트가 갈라파고스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종이라고 한다. 날마다 다른 섬을 찾아가 갈라파고스 고유종을 만나는 크루즈는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이 이어진다. 갈라파고스에서의 하루는 요트의 식당 옆 칠판에 적힌 일정표를 훑어보는 일로 시작된다. 오늘 섬 상륙이 마른 땅으로 바로 내리는 ‘dry landing’인지 얕은 바다를 통과해야 하는 ‘wet landing’인지도 적혀있기 때문에 신발이나 옷차림을 그에 맞춰 준비한다.
‘팡가’라 불리는 작은 배를 타고 섬에 내리는 순간, 생태 지식이 풍부한 가이드는 오늘도 우리를 대상으로 자연 학습을 시작한다.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 해돋이를 보기 위해 ‘중국 모자 섬’으로 향했다. 밀짚모자 형상을 한 섬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리던 시간. 섬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영 중인 바다사자들과 우리뿐. 맨발로 해변을 걸으며 바다사자들과 눈을 맞추고 있을 때, 아기 바다사자가 뒤뚱 뒤뚱 내게 다가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아기가 냄새로 어미를 찾는 중이란다. 그 작은 아기 바다사자가 내 몸에 코를 묻고 있던 그 순간, 시간이 멈추어 주기를 얼마나 바랐던지.
해변을 걸으며 보내는 시간도 즐겁지만 갈라파고스가 선물하는 최고의 기쁨은 역시 스노클링이다. 하루에 두 번씩 하는 스노클링을 통해 바다에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들을 만나게 된다. 오전의 스노클링에서는 바다사자 한 마리가 수천 마리의 작은 물고기 떼들과 장난 치는 모습과 마주쳤다. 물고기 떼 주변을 원을 그리며 헤엄치다가, 꼬리로 물결을 갈라 물고기들을 흩어지게 만들고, 공중 우회전 돌기를 하며 물살을 튕기기도 하며 신이 나서 놀고 있던 바다사자 한 마리.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그를 바라보던 순간, 투명하고 따스한 햇살이 우리 어깨를 만지고 있었고, 바다는 잠 든 듯 고요했다.

다음날은 팡가를 타고 검은 거북이 후미(블랙 터틀 코브)를 찾아간다. 바다로 뿌리를 내린 맹그로브 나무들 사이에서 헤엄치는 바다거북을 만나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거북이가 내뱉는 하아, 하는 숨소리.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맹그로브 나무들이 거북을 향해 나뭇잎을 흔들어댄다. 갈라파고스에 남아있는 19,000 마리의 바다거북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거북이 옆으로는 흰 상어들이 헤엄치고 있다. 그들의 하얀 몸이 햇살을 튕겨내듯 빛나고 있다. 하늘에는 군함조들이 맴을 그리며 돌고 있고, 물가에는 먹이를 찾는 펠리칸 몇 마리. 맹그로브 나뭇가지 위에는 해오라기와 백로, 갈색제비 갈매기들이 자세를 단정히 하고 앉아 있다. 이 섬의 평화는 인간이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발트라 섬을 찾았던 어느 오후, 해변의 해먹에 누워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는 내 발밑에는 네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바로 옆 미끄럼틀 위에서 뛰노는 소녀들의 발치에도 천연덕스레 자고 있는 바다사자들이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저 아이들의 마음결은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학원과 학원 사이를 봉고차에 실려 다니며 자라는 우리네 아이들과 얼마나 다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한숨이 나왔다. 어쩐지 슬퍼진 나는 원피스를 입고 뛰어 노는 소녀들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내내 바라봤다.

갈라파고스에는 알바트로스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섬도 있다. 바로 에스파뇰랴 섬이다. 이 섬에 상륙하자마자 수백 마리의 이구아나들과 갓 태어난 새끼 바다사자들이 우리를 사로잡더니 곧 알바트로스의 새끼들과 마주쳤다. 털이 삐죽삐죽 삐져나온 저 귀여운 새끼가 그토록 거대한 새가 된다니 믿기지 않는다.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3미터에 이르러 바다새 중에서 가장 크다는 알바트로스. 알바트로스 수컷은 자기 알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 키우는 좋은 아버지란다. 주변으로는 알을 품고 있거나 갓 나은 새끼를 돌보는 파란 발 부비 떼들이 보인다. 빼어난 수직낙하 다이빙 실력으로 유명한 파란 발 부비는 알을 훔쳐가기 너무 쉬워 ‘얼간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이빙 실력만큼은 어떤 새도 부비를 따라갈 수가 없다. 다윈핀치 새도 여기저기 보인다. 대륙에서 건너온 핀치 새가 갈라파고스에서 번식하는 동안 섬의 생태적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했다고 해서 다윈의 진화론을 결정지은 새다. 갈라파고스에만 13종류가 있는데 섬마다 새의 부리 모양이 다르다고 한다. 이 섬은 정말 새들의 천국이다. 부비의 멋진 다이빙을 지켜보던 내게 옆에 있는 친구가 슬며시 말을 건넨다. “부비가 물속으로 다이빙 하듯 사랑 안으로 뛰어들라”며.

플로리아나 섬의 무인 우체국 이야기도 빼놓을 수는 없으리라. ‘우체국 만(Post Office Bay)'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1793년부터 우체국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이곳은 갈라파고스를 지나는 모든 배의 선원들이 잠시 정박하던 곳이었다. 이 섬의 해변에 바다거북이들이 알을 낳기 때문에 고기와 알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 섬에서 우체국을 시작한 건 제임스라는 영국남자였다. 그는 해변에 낡은 나무 우체통을 걸어두었다. 그 안에 든 편지 중에 자신의 고향으로 가는 편지가 있다면 선원들이 고향에 돌아가 직접 전해주던 전통을 지금은 관광객들이 이어가고 있다. 나는 서울의 조카에게, 내 친구는 부안의 할머니에게 엽서를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전라남도가 수신지였던 어느 청년의 엽서를 들고 와 그의 집으로 부쳐주었다. 우리가 남겨둔 엽서들도 몇 달 후, 조카와 할머니의 손에 가 닿았다.

에스파뇰라 섬의 가드너스 베이에서 보낸 시간도 잊을 수 없다. 지금껏 만난 갈라파고스의 해변 중에 최고의 물빛과 고운 모래 사장을 지닌 곳이었다. 수많은 바다사자들, 해조류를 뜯어먹는 마린 이구아나들. 혼자서 바다를 가로지르던 거북이 한 마리. 하얗게 빛나는 모래를 밟으며 백사장을 걷고, 바다사자들 곁에 누워 사진을 찍고, 헤엄치는 마린 이구아나들을 정신없이 바라보던 시간. 천국이 있다면, 그곳의 풍경은 이곳과 같을 거라고 믿었던 곳. 내 마음에 평화와 사랑이 가득 차올라 나도 모르게 모래 위에 조개껍질로 ‘peace'와 ’love' 두 글자를 쓰게 만들었던 곳이다.

누군가 나에게 남미에서 보낸 가장 행복한 시간을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도 없이 갈라파고스에서 보낸 날들을 꼽을 것이다. 마치 꿈처럼 흘러갔던 7박 8일의 시간이었다. 갈라파고스는 언젠가 먼 훗날,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찾고 싶은 나의 ‘오래된 미래’다.
*외로운 조지는 2012년 가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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