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빚어진 진흙의 땅을 벗어나 어딘가 가장 멀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질 때 어디로 가야 할까. 온갖 관계의 그물에 결박당해 상처가 아물 날 없는 고단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질 때 위안이 될 수 있는 땅은 어디일까.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 브라질에서도 가장 가기 힘들다는 섬은 어떤지.
10킬로미터 길이에 폭 3.5 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섬. 하루 750명만 들어갈 수 있는 섬. 브라질 서민들이 ‘일생에 한 번 그 섬에 가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곳.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1위부터 3위까지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섬. 그곳에서라면, 두고 온 땅과 거기 배어 있는 눈물의 맛을 잊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 섬에서는 인터넷조차 거의 연결되지 않아 세상과의 단절이 선물처럼 따라오니.
그 섬의 이름은 페르난두데노로냐(Fernando de Noronha). 브라질 본토의 해안선에서 324킬로미터 떨어져있고, 배가 다니지 않아 비행기를 타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섬이다. 여행안내 책자에 ‘중독성이 강한 섬이니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들어가라’고 적혀있는 섬. 다이빙, 서핑, 스노클링에 최적의 섬이자 승마나 하이킹도 즐길 수 있는 곳. 무엇보다 이 섬은 브라질 최고의 생태휴양지로 꼽힌다. 자연 환경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법적 규제들이 만들어져 있어 섬의 원주민들은 이 섬을 ‘No의 섬’이라 부를 정도다.
페르난두데노로냐 섬이 포르투갈 지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502년. 꾸아레스마(Quaresma)라는 이름으로서였다. 1504년, 포르투갈 상인 페르난두데노로냐가 포르투갈의 왕 돔 마노엘로부터 이 섬을 증여받았다. 하지만 한 번도 이 섬에 발을 디딘 적 없던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 섬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채 세상을 뜬다. 1737년, 포르투갈이 이 섬을 재탈환할 때까지 섬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에 의해 번갈아가며 지배받았다. 이후 이 섬은 정치범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미군 기지로 사용되었다.
1988년, 페르난두데노로냐 군도의 개발과 보호를 둘러싼 개발론자들과 환경운동가들 사이의 긴 투쟁이 끝난 후, 군도의 75%에 이르는 지역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이 된 이 군도는 21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다. 유일한 유인도인 본 섬이 바로 군도의 이름을 딴 페르난두데노로냐 섬이다.
섬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승객들은 대부분 장소에 굴하지 않고 짙은 스킨쉽을 나누며 신혼여행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젊은 커플이거나 값나가는 장신구로 치장한 중장년층들이다. 이 섬이 아무나 갈 수 없는 섬이 되는 주된 이유는 바로 비용이다. 500킬로미터 남짓의 거리를 비행하는 데 드는 항공료가 최저 50만원에서 100만원 사이. 항공료도 문제지만 섬 내에서의 물가도 만만치 않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섬이기에 식재료나 생필품은 모두 육지로부터 수입된다. 당연히 육지의 2배 이상의 물가가 따라온다. 게다가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하루당 2만원의 체류비를 내야하고, 해상 국립공원 입장료 7만원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가난한 여행자의 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들지만, 허리가 부서질 만큼 일을 해 기꺼이 비용을 감당하고 싶어질 정도로 섬은 매혹적이다.
섬을 둘러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보트 투어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섬의 북부에서 남부까지 한 바퀴를 돈 후 산쇼 해변 부근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며 섬의 물고기 떼와 첫 인사를 나눈다. 이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배를 따라 오는 스피너 돌고래 떼의 점프 감상. 그날의 돌고래들의 ‘쇼’에 매혹된 이들은 다음날 다시 돌고래들을 만나기 위해 ‘돌고래 전망대’를 찾아간다. 매일 아침, 사냥을 마친 300여 마리의 돌고래 떼들이 물살이 잔잔한 ‘돌고래만’으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돌아온다.
잠에서 덜 깬 눈을 비비며 찾아간 새벽 6시의 돌고래 전망대. 그곳에는 이미 돌고래 센터의 직원들이 출근해 그날의 돌고래 수를 세고 있다. 매일 돌고래를 세는 일을 하며 산다는 건 얼마나 평화로운 일일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만족감을 주는 일이 아닌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우리들 눈에 돌고래는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망원경을 돌려가며 돌고래의 꼬리를 찾고 세어본다. 잔잔한 바다로 쉬러오는 돌고래 떼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새벽잠을 설치며 찾아온 인간들 사이의 말없는 우정이 오가는 시간. 바다 위의 그 까만 점을 좇고 있는 사람들과 먼 바다에서 유유히 돌아오는 돌고래 떼. 이토록 짧고 강렬한 교감이 또 있을까. 하루를 이토록 충만하게 시작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돌고래들을 만난 후에는 전망대에서 이어진 트레일을 걸어 산쇼 해변(Baía do Sancho)으로 내려간다.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1위로 뽑힌 곳이다. 이곳에는 해변의 전망을 독차지하는 호화로운 리조트도, 마구잡이로 지어올린 가건물도, 심지어 해변 풍경의 필요조건인 파라솔과 의자조차 없다. 이곳에 있는 것은 오직 수 만 년 전의 모습 그대로 펼쳐진 모래사장과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씻는 야자나무들 뿐. 들리는 소리는 몸을 뒤집으며 뭍으로 뭍으로 달려드는 파도의 뒤척임뿐이다.
지상에는 분명 이보다 길고 고운 모래를 지닌 해변이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반짝이는 물빛을 자랑하는 바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완벽하게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채 남아있는 해변이 있을까. 그리고 이토록 텅 비어 고즈넉함을 안겨주는 해변이 또 있을까. 이 섬이 품은 가장 큰 비밀은 저마다 그림 엽서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16개의 해변이 거의 모두 텅 빈 채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산쇼 해변이 그 완벽한 공(空)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면 수에스테 해변(Baía do Sueste)은 이 섬을 빛내주는 다양한 생명체들을 품은 곳이다. 이곳에서의 스노클링은 바다 거북이들과 함께 헤엄을 치고,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상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한다. 두 발의 핀으로 거북이를 건드리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울 정도의 거리에서 거북이와 함께 수영을 즐길 수 있다니! 해초를 뜯어먹느라 바쁜 거북이, 앞발을 부드럽게 저어가며 호흡을 하기 위해 물 위로 떠오르는 거북이의 우아한 동작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황홀해진다.
어느 오후, 여섯 마리의 커다란 바다거북이들, 세 마리의 상어, 두 마리의 큰 가오리, 그 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수천 마리의 열대어들과 어울려 보낸 시간의 풍경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소리가 사라진 물 속 세계의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모습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플란보얌 나무의 붉은 꽃잎이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오후,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거나 엽서를 쓰며 보낸 시간의 고요함은 또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이 섬의 아름다움은 전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와서 느끼고, 경험하며 몸에 새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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