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 & 인테리어2014. 11. 11. 20:44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에 한국적 색채를 더한 젊은 목공예 작가의 작품
젊은 목공예 작가의 ‘아트 퍼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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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주름처럼 결과 나이테가 드러난 책상, 오랜 시간 함께해 손때 묻은 의자…. 목가구는 아날로그 감성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준다. 최근에는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MDF 박스나 중후한 고가구 대신, 젊고 감각적인 디자인 가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조지 나카시마’를 꿈꾸는 3인의 젊은 목공예 작가를 만났다.
가구 하나에도 공간과 디자인을 고려하는 시대,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수제 가구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가고 있다. 친환경, 그린 럭셔리 등이 이슈가 되면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것은 목공예. 지난해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이 국내 판매된 것을 시작으로, 4월 열린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는 약속이나 한 듯 나무 소재의 가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제 목가구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절제의 미학’이 돋보이는 박종선 작가의 작품은 2010 바젤 아트 페어에서 외국 컬렉터의 높은 관심을 끌었고, 내촌 목공소 이정섭 작가의 작품은 완성되기가 무섭게 판매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목가구라고 하면 저렴한 원목 가구나 중후한 멋이 있는 고가구가 떠오르지만,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다르다. 극도로 미니멀한 디자인에 한국적인 선을 더해 오피스텔이나 아파트 같은 현대의 주거 공간에 놓아도 훌륭한 하모니를 이룬다. 각기 다른 스타일로 한국적 목공예의 미래를 고민하는 그들을 소개한다.

(왼쪽) 2011 마이애미/ 바젤에 출품한 책상, ‘스팀 18’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곡선의 미학
배세화 작가
 올해 서른둘인 배세화 작가는 고3 수험생과 다름없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일산 성재공단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씩 나무와 씨름 한다. 장맛비가 퍼붓던 7월 초에도 그는 아침부터 작업실에 나와 있었다. 한쪽에 켜켜이 쌓인 호두나무 목재, 벽에 걸린 공구, 바닥에 가득한 나무 가루가 인상적인 공간이다. “장마철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할 일이 많아 손을 놓을 수 없다.” 캡슐 커피를 건네며 배 작가가 말한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작가 중 한 명이다. 오는 9월에는 런던 크리스티가 운영하는 갤러리 ‘헌치 오브 벤션Haunch of Vension’, 내년에는 뉴욕 R20 센추리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벌써부터 그의 신작을 구입하겠다는 문의가 빗발친다. 2010 디자인 마이애미, 2011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 등에서 작품을 인정받은 결과다.

배 작가가 2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가구 디자이너로 떠오른 것은 예술성을 겸한 독보적인 디자인 덕분이다. 그는 단면이 1×1cm인 긴 나무 막대를 촘촘히 이어 붙이는 ‘스팀 벤딩steam bending’ 기법으로 가구를 만드는데, 의자에 앉는 부분이나 등받이 부분을 둥글게 휘어 곡선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처음 대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큰 나무 목재를 통째로 사용했다고 착각한다. 배세화의 작품에서 해외 컬렉터는 과하지 않고 절제된 동양적인 선에 깊은 인상을 받고, 국내 미술 애호가들은 모던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받는다.

‘스팀’ 시리즈는 배 작가의 대표 작품으로, 1인용 의자, 긴 벤치 등 유기적인 곡선을 강조해 만든 다양한 의자들이 있다. “스티머에 목재를 넣고 1시간 정도 열을 가한 뒤, 충분히 습기가 차면 재빨리 구부려 곡선을 만든다. 10~15초면 나무가 식어 금세 굳기 때문에 고도의 숙련된 테크닉이 필요하다. 딱히 맡길 곳이 없어 모든 작품은 직접 만든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한달 반에서 두 달 정도 걸리는 이유가 그 때문. 1년에 10점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너무 많이 만들면 작업이 재미없어진다.” 배 작가의 설명이다.

‘스팀’ 시리즈를 처음 구상한 것은 대학원 시절. 작가는 “부피감이 큰 나무 가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차츰 곡선과 직선을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지금의 디자인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나무를 택한 이유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소재이기 때문. “스틸이나 플라스틱은 가공물이지만, 나무는 소재 자체가 자연 그대로다. 자연이 만든 재료를 인간이 디자인하는 작업이 흥미롭다.” 

배 작가는 아직도 만들고 싶은 가구가 무궁무진하다. 책상, 책장, 침대 등 다양한 ‘배세화식 가구’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충분하게 하나의 작업을 끝낸 뒤 자연스레 다른 가구로 전환할 거라고 말한다. 지난 바젤 아트 페어에 출품한 ‘스팀 18’은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던 작품. 언뜻보면 3단 서랍장이 달린 단순한 책상이지만, 옆 모서리에서 앞면까지 목재를 곡선으로 구부려 만든 디자인이 압도적이다. 세계 무대로 비상을 앞둔 그는 어떤 작가로 불리길 원할까? “행복한 작가, 진심으로 작업을 즐기는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나무 만지는 일이 정말 재미있으니까!”

배세화 작가는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6년 경기 가구우수디자인공모전 우수상, 2008년 아사히가와 국제가구디자인공모전 은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 서미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은 뒤, 디자인 마이애미, 디자인 마이애미/ 바젤에 참여해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오디오와 나무가 만났을 때
유광수・박수진 작가
 목공예 작가의 작업실은 둘러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목공예 작가 유광수 씨가 운영하는 홍대 작업실 ‘수와 크래프트Soowa Craft’도 마찬가지다. 합판을 잘라 만든 화장실 문과 싱크대, 충전기 선을 담은 나무 케이스…. 직접 만든 흥미로운 인테리어 소품으로 가득하다. 홍익대학교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유광수 작가는 목공예 작가로 활동한 지 올해로 8년째다. 그의 가구는 심플한 디자인에 유머와 위트를 더한 것이 특징이다. “언뜻 평범한 가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재미난 요소를 찾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각 작품마다 흥미로운 디자인 장치가 눈에 띈다. ‘칸khan’ 시리즈는 가늘고 긴 각목을 격자로 쌓아 만든 소파로 언뜻 벌집 같다. 태엽을 감으면 앞으로 나가는 의자, 서랍장을 LED 소재로 만든 뒤 손톱만 한 전구 수십 개를 압정처럼 꽂아 원하는 글자를 연출하는 작품도 있다. 가장 반응이 좋은 가구는 ‘사운드 라이팅 데스크Sound Writing Desk’. 나무 책상에 오디오 기기를 장착해 1950~1960년대 대형 장전축을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컴파운드 보디-05’는 진공관 오디오 장인 서병익 씨와 컬래버레이션해 완성한 것으로, 상단에 스피커, 하단에 오디오 플레이어를 장착한 나무 책장이다. “가구는 생활 속에서 사람과 상호 관계를 맺을때 비로소 제 기능을 한다. 가구 어느 한 부분에 사람들과 재미있게 호흡할 수 있는, 디자인 포인트를 넣고자 노력한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유광수 작가와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박수진 씨 역시 젊은 여성 목공예 작가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해 회사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업무를 담당해오다 대학원에 들어가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다. 나무를 만진 지는 올해 5년째지만, 오랜 시간 인테리어를 공부한 덕분에 공간까지 고려해 가구 디자인을 한다. 그녀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나무 자체가 매우 무겁고 손에 가시가 박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회상한다. 박 작가는 주로 관념적인 작품을 만드는데, ‘미러’는 속이 텅 빈 나무 액자 프레임을 가운데 두고 머리를 맞댄 채 기울어진 스탠드 조명. ‘미러 2’는 빈 나무 액자를 중심으로 맞닿은 두 개의 테이블 로 자꾸 바라보고 사유하게 된다.

두 작가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유머와 위트. 가구란 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것인 만큼 새롭고 유쾌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이들의 철학이다. 여러 재료 가운데 나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유 작가와 박 작가는 각기 말한다. “나무에는 ‘표정’이 있다. 일단 켜봐야 어떤 무늬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작품을 만들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한 기분이 든다. 그 다양한 결을 조화롭게 맞추는 일이 어렵지만,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또 목공예다.” “나무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정서’가 좋다. 한번 작업해본 사람은 쉽게 뿌리치기 힘들다. 도면만 디자인하고 제작은 공장에 맡기라는 이들도 있지만, 우린 모든 제작에 참여하는 것만이 나무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길이라 믿는다.”

(오른쪽) 태엽을 감으면 앞으로 움직이는 재미있는 의자. 

유광수 작가는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한국 국제가구 및 인테리어산업대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베를린 디자인 페스티벌에 참가해 주목받았다. 같은 대학에서 인테리어를 전공한 박수진 작가와 최근 가구 브랜드 ‘수와 크래프트’를 만들었다. 홈페이지(www.yukwangsoo.com)에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 목가구의 현대적 해석
진홍범 작가
 진홍범 작가는 건축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부동산 관련 일을 했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린 시절을 한옥에서 보낸 작가는, 청년 시절부터 고건축에 심취해 전 통가옥을 탐구하고 고민해왔다. 20대에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다니며 전국의 유명 사찰과 건물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부석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새벽 예불을 듣고 나와 마주한 하늘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한국적인 정서들이 전통 가구를 만드는 데 은연중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던 진 작가가 나무를 만지기 시작한 것은 2005년도. “당시 DIY 가구 제작이 붐을 이루면서 가구 디자인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공원이 아니면 나무를 보고 만질 일이 거의 없지 않나. 나무를 만질 때 느낌이 참 좋았다. 마음이 지칠 때면 손바닥으로 결을 훔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목공예에는 배경 지식도, 기술도 없던 그는 그때부터 독학으로 깨우쳤다. 도서관과 인터넷 카페 자료를 뒤지며 나무 결구법과 마감법 등을 학습했다. 어느 정도 기본기를 익힌 후 작가로서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만난 ‘스승’이 유리화 작가 조규석이다. “선생께 나무로 만든 액자를 선물했더니, 그 안에 멋진 유리화를 넣어 다시 주시더라. 근사한 작품으로 거듭나는 액자를 보고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진홍범 작가는 한국 전통가옥과 생활양식에서 그 답을 찾았다. 최대한 꾸밈을 절제하며 전통미가 담긴 디자인을 연구했다. 전통 창호에서 영감을 받아 책상 다리에 목재를 이어 붙였으며, 의자 다리를 낮게 제작해 좌식 문화를 표현했다. ‘플로어 체어Floor Chair’는 일반 의자보다 훨씬 깊어 바닥에 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선 목가구는 시대가 변화하면서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락해버리는 현실이 됐지만, 한국 고유의 정서와 품격이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나무에 수축・팽창으로 인한 골조 형식의 구조미가 있는데, 면 분할을 통해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조선 목가구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국산 목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 작가는 목재를 찾아 직접 길을 나섰다. 파주 작업실 근처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길을 내느라 쓰러진 나무가 많았다. “지나가다가 괜찮은 나무가 쓰러져 있으면 탐이 나 가져오곤 했다. 자잘한 재목부터 큰 재목까지 모든 것은 가구의 주제가 된다. 참죽나무, 느티나무 등을 주워 공방에서 말렸고, 톱으로 일일이 잘라봤다. 시간도 들고 몸도 고달팠지만, 몸으로 부딪히면서 나무를 알아갔다.” 우리나라 목재 중에는 느티나무를 제일로 치는데, 부드럽고 잔잔한 무늬가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맞는다. 최근에는 백참나무(화이트 오크)를 주로 사용하는데, 우리나라 대나무를 오래 두고 사용하면 그와 유사한 색이 난단다.


(왼쪽) 프레임 중앙에 유리를 끼워 마치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
(오른쪽) 등받이를 최소한으로 살려 디자인한 의자, ‘Lee-chair’ 


그의 가구를 찾는 사람들은 중년 고객, 특히 생의 마지막 가구를 구입하려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 때문에 진 작가는 그들의 남은 삶을 함께할 수 있는 가구, 그들이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가구를 디자인하고자 한다. “가구 디자인의 기본은 ‘배려’다. 아름다움은 쓰임을 만들지 못하지만, 쓰임은 아름다움을 만든다. 목공예는 쓰임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작업인 만큼, 사용하는 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가구를 만들고 싶다. 광화문, 숭례문이 한국의 유산이듯 가구는 가족의 역사이자, 추억이다. 그런 마음 때문에 한 번이라도 더 목재를 다듬고, 작업에 힘을 쏟는다.” 

진홍범 작가는 조선 목가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목공예 작가다. 2009년 파주 헤이리 유리재 갤러리, 2009년 공평 갤러리 개인전은 물론, 지난 4월 경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작가로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파주 헤이리 근처 작업실은 물론, 홈페이지 (www.jinhongbum.co.kr)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Posted by 탑스미네랄